2019/04/17 - [여행] - 제주4·3 하귀리 영모원 - 제주여행
제주 4·3 만벵듸묘역(공동장지) - 제주여행
예비검속희생자 만벵듸묘역(공동장지)
명월 상동 갯거리오름 서남쪽으로는 1950년 음력 7월 7일 모슬포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집단 학살된 민간인들을 매장한 만벵듸 공동장지가 있다.
제주의 아픔이 묻어 있는 만벵듸묘역(공동장지)을 찾았다. 만벵듸묘역은 섯알오름 희생자의 묘역이다.
그곳에서 희생된 사람63명중 46위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만벵듸묘역(공동장지)로 가는 길은 마음은 무거웠다.
하지만 봄날의 기운이 따뜻하고 길가의 유채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 있어 가는 동안은 잠시 봄날의 기쁨을 즐겼다.
한림의 옛 이름이 한수풀이라한다. 이곳에 2014년에 한림고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개척하여 만든길이라고 ~
한수풀역사순례길은 총6개구간으로 20km이다. (마대기빌렛길, 묵향의길, 4·3상생의 길, 하늘가는길, 성이시돌나눔길, 최영장군 토벌의 길) ~ 시간이 된다면 한수풀역사순례길을 언제가는 한번 걸어 보고 싶다.
이렇게 유채꽃만 보아도 즐거운 봄날씨였다.
개인묘지(?)입구에 세워진 돌하르방, 돌하르방을 보니 여기는 제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묘지가 생각보다 많았다.
만벵듸묘역 입구
만벵디 공동묘역의 내력
이곳 만벵디 묘역에 안장된 영령들은 1950년 8월20일(음7월7일) 새벽 송악산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무참히 학살된 원혼들입니다. 1950년 한국 전쟁(6.25)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사상이 의심스럽다' '4.3사건 당시 가족중 누군가 희생되었다' '군,경,관에 비협조적이다'는 등의 이유로 아무런 재판 절차도 없이 희생된 무고한 양민들이었습니다.
유족들은 시신 인도를 간절히 요구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살아온지 6년 만인 1956년 3월에 시신수숩이 이루어져 이 곳에 안장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2001년 8월 제주도와 북제주군의 지원으로 위령비가 건립되고 묘역이 정비되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희생자 수는 62명인데 현재 이 장지에는 46위가 안장되어 있으며 그외는 개인 묘지에 묻혔습니다.
2004년 8월 7.7 만벵디 유족회
만벵듸묘역 안에는 많은 묘지가 있습니다. 공동묘지가 별다른 시설은 안보입니다.
만벵듸묘역의 위령비입니다.
만벵듸 공동장지는 유족 중 한분이 무상으로 부지를 제공하였다고 합니다.
4·3 학살은 다양한 이유로 확대되었는데 6.25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이 더해졌다. '예비검속'은 미리 검사하고 통제하는 일이다. 가족 중에서 4·3 관련자가 있거나, 사상이 의심스럽거나, 군경에 비협조적이거나… 뚜렷한 증거도 없이 단순한 의심만으로 이유없이 사람을 잡아가서 죽인것이다.
방문객을 위한 간이 쉼터도 이렇게 마련되어 있다. 여기 앉아서 바라보는 위령비가 왠지 슬퍼보인다.
희생자 가족들은 여려가지로 고통받았다. 4·3에 연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소리를 들어야 했고, 이웃끼리 가해자와 피해자로 기억을 간직한채 살아가야 하기도 했다. 그들은 오랜시간 동안 눈물을 삼켜야했다. 그동안에 많은 증언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희생자들이 떠난자리에는 오늘도 동백꽃이 핀다고 한다. 피를 먹은 자리에 피는 꽃이라 그런지 동백꽂이 유난히 붉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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