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낙선동 4.3 성터를 가다
[제주여행] 낙선동 4·3 성터를 가다

 

제주의 아픈역사를 간직한 낙선동 4·3 성터를 다녀왔습니다.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387-2

     

 

제주 낙선동 4·3성은 1949년 봄, 토벌대의 무력진압이 한창일 때 주민들과 무장대 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쌓은 성이다.

4·3사건으로 선흘 마을이 불타버린 후 해안 마을인 함덕리 수용소 등지에서 생활하던 선흘리 주민들과 조천면 관내 주민들을 동원하여 1개월에 걸쳐 쌓았다고 한다. 당시의 성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100m, 높이 3m, 폭 1m이었다.

현재는 성곽 292m,  가건물(함바) 1동, 초소 막 5동, 지서 1동, 화장실(통시) 4동으로 복원되었다.

낙선동 4·3 성은 당시의 성 모습을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 

 

♣ 정문초소(A guard post)

 

 

 

1948년 11월부터 중산간 마을이 토벌군에 의해 초토화 되었고,

여기 선흘리 낙선동 또한   11월21일 마을이 불타고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통시(Toilet)  

 

 

당시 제주도 전역에 쌓았던 성은 겉으로는 무장대습격에 따른 방어용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경찰지서(A police substation)  

 

 

 

 

 

보초대기소(A sentry station) 

 

 

 

경비망루에서는 인근 주변이 한 눈에 보인다.

경비망루(Watchtower)

 

 

총안(Loophole)  

 

 

성 안에서의 집단생활은 참으로 비참하였다.

주거지는 허름하고 좁은 함바집이 전부였고

낮에는 밭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보초를 서야만 했다.

더군다나, 젊은 남자들은 희생되어 부녀자와 노인들이 곤역을 치루었다.

 

함바집(Poverty house)  

 

 

 

새밭(A field of eulalia)

이곳은 낙선동 4·3성 내 초가지붕을 잇는 재료인 새를 재배하는 곳

 

 

당시에는 주민들이 돌을 등짐으로 날라서 성을 쌓았다고 한다.

 

성담(Rampart)  

 

 

축성 당시 성밖으로는 도랑을 파서 가시덤불을 놓아서 무장대의 침입을 막았다

 해자(Moat)

  

 

아픔의 역사속에서도 감귤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지금은 평온한 4·.3 성터

 

제주근현대사의 아픈 역사인 4·3 사건이 완전히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이땅에는 그 당시의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른다.

이땅에 다시의 이런한 비극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일행은 고개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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